• 수. 12월 17th, 2025

뉴욕 경매를 달군 걸작들: 김환기의 푸른 점화와 1달러 지폐의 주인공

By강혜림 (Kang Hye-rim)

12월 17, 2025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 김환기 화백이 남긴 푸른빛의 대작이 다시 한번 세계 미술 시장에서 그 가치를 입증했다. 현지시간 17일 뉴욕에서 진행된 크리스티 ’20세기 이브닝 세일’에서 김환기의 1971년작 전면점화 ’19-VI-71 #206’이 840만 달러, 한화로 약 123억 1천600만 원에 낙찰되는 기염을 토했다. 이는 한국 미술품 경매 역사상 두 번째로 높은 가격으로, 최고가 기록을 보유한 ‘우주(Universe 5-IV-71 #200)’의 뒤를 잇는 성과다. 당초 추정가가 750만 달러에서 1천만 달러 사이였음을 고려하면 무난하면서도 견고한 가격에 새 주인을 찾은 셈이다.

이번에 낙찰된 작품은 가로 254cm, 세로 203cm에 달하는 대형 캔버스에 점들이 방사형으로 뻗어나가는 구도를 취하고 있다. 화면 상단보다 한층 깊은 색조의 에메랄드빛 띠가 하단에 배치되어 신비로움을 더하는데, 이는 마치 우주로 팽창하는 듯한 무한한 공간감을 선사한다. 크리스티 측은 1970년대 초반 제작된 김환기의 작품 중 200호 이상의 대작이 30점 미만이라는 점을 들어 이 작품의 희소성을 강조했다. 비록 2019년 홍콩 경매에서 약 132억 원에 낙찰된 ‘우주’의 기록을 넘어서지는 못했으나, 김환기 예술의 절정기인 뉴욕 시대의 정수를 보여주는 수작임은 분명하다.

김환기 화백은 1963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이후 미국 추상화에 충격을 받고 뉴욕으로 건너가 독자적인 ‘점화(點畵)’ 양식을 완성했다. 특히 1971년은 그가 화면을 점으로 가득 채워 우주적 깊이를 표현하는 기량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로 평가받는다. 이번 경매 결과로 역대 한국 미술품 최고가 1위부터 3위까지 모두 김환기의 전면점화가 차지하게 되었는데, 3위는 2018년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 약 85억 원에 거래된 1972년작 붉은색 점화다.

빚더미 화가가 남긴 미국의 상징, 조지 워싱턴 초상화

한국 미술이 뉴욕에서 저력을 과시하는 가운데, 다가오는 1월 크리스티 경매에는 미국 역사의 상징과도 같은 작품이 등장을 예고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해 오히려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얼굴, 바로 1달러 지폐 속 조지 워싱턴의 초상화 원본 중 하나가 경매에 부쳐진다. 길버트 스튜어트가 1804년에 그린 이 유화 작품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인 제임스 매디슨이 직접 의뢰했던 것으로, 이후 골드러시 시대의 거부 등 여러 수집가의 손을 거친 역사적 물건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위엄 있는 초상화의 탄생 배경에 화가의 궁핍한 삶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로드아일랜드 출신의 길버트 스튜어트는 유럽에서 방탕한 생활을 하다 빚을 져 더블린의 채무자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 감옥에서 풀려난 그는 “워싱턴을 그려 큰돈을 벌겠다”는 일념으로 미국으로 돌아왔고, 초대 연방 대법원장 존 제이의 소개장을 들고 필라델피아에 있는 워싱턴을 찾아갔다. 스튜어트의 예상은 적중하여 그는 100점이 넘는 워싱턴 초상화를 그려내며 빚을 청산할 수 있었다.

이번 경매에 나오는 작품 역시 당시 제작된 수많은 초상화 중 하나로, 1달러 지폐의 모델이 된 바로 그 이미지다. 분을 칠한 머리카락과 주름 장식이 달린 셔츠, 그리고 특유의 근엄한 미소는 미국인들의 뇌리에 깊이 박혀 있는 상징적인 모습이다. 캐리 레보라 배럿 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큐레이터는 이 작품에 대해 “미국 미술 수집가들이 갈망하는 미국의 장엄한 역사를 담고 있다”고 평했다. 50만 달러에서 100만 달러, 한화로 수억 원을 호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 작품은 단순한 그림을 넘어 빚에 시달리던 화가가 붓 하나로 빚어낸 아메리칸드림의 증거이기도 하다.